하얀 레이스 브라렛. 쨍한 청바지. 가슴까지 내려온 굵은 컬의 갈색 머리. 그녀는 내리쬐는 햇빛 아래 가만히 앉아 있다. 촉촉했던 잔디는 어느 새 뽀송해졌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어쩐 일인지 습하지도 않다. 공기를 들어마신다. 한참 공기를 가두고 있다 후- 내뱉는다. 그녀는 짙은 초록빛 잔디를 움켜쥐고 있다. 짙은 초록색과 대조되는 하얀 손은 어쩐지 ...
여기 한 뭉텅이의 실이 있어요. 이건 방금 제 아내가 토해낸 실이에요. 아, 물론 내 아내는 고양이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녀는 고양이같은 이런 고질병을 앓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저건 무엇인가. 저 새까만 실뭉치는 그녀의 상처와 스트레스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뭉치입니다. ‘실'이지만 우리가 아는 부드러운 실과는 달리 아주 거칠고 굵은 날카로운 가시들이 돋혀있...
-남자 시점- 종일 앉아서 글 쓰며 시간을 보내려 했는데 이 추운 날 날 밖으로 불러내는 친구 때문에 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챙겨 든 크로스백에 ‘Lucy’란 이름의 독자가 준 키링을 달고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나갔다. 지인 외엔 아무도 내가 작가란 걸 모르니 이 키링의 출처는 아무도 모를 것이 분명했다. 밖이 추울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내가 보는 세상은 좀 달랐다. 바람이 보였고 햇살도 선명히 보였다. 꽃들의 향기도 보였다. 꿀벌과 나비가 날아다닌 길도 보였다. 풀잎과 나무의, 예쁜 새들의 소리도 보였다. 모든 것이 완벽히 아름다워 보였지만 여전히 내 세상은 어둠이었다. 모든 것이 어두웠고 난 나만 볼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사랑하는 이의 숨결이 보인다. 그이의 마음이...
나의 소녀야, 너를 훑고 불어온 바람이 내 코 끝을 스칠 때 봄을 맡을 수 있었다. 어두운 날, 오직 달만이 너를 환히 비출 때 너의 눈물이 보드라운 뺨을 타고 보석이 되어 풀잎을 촉촉이 적셨지. 황혼이 깃든 새벽녘 날 흔들어 깨우며 소리쳤던 너를 기억한다. "해님, 지금을 보셔야 합니다. 아마 지금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 거예요!" 잔뜩 들떴으면...
아버지는 평생을 여행 다니셨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지 나는 20살이 넘도록 몰랐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고 그게 썩 궁금하지도 않았다. 한국에 돌아오시는 건 짧으면 2주에 한 번, 보통은 한두 달, 가장 길었던 건 2년이었다. 오셔도 얼굴 한 번 안 보여주신 적도 많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무슨 존경하는 교수님 얘기하듯 혹은 사랑하지만 닿을 수 없...
-남자 시점- 그날의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며칠간 그녀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밥을 먹을 때도, 씻는 중에도 그날의 별 같던 그녀가 생각났다. 일상생활이 안 될 정도로 그녀가 기억에 남다니. 나는 여자들과의 관계가 굉장히 깔끔한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웬만해선 여자와 어울리지 않았고 어울린다 해도 깊게 관여된 적이 없었다....
-남자 시점-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그날은 하얀 눈이 잔뜩 내렸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다. 저녁 6시경 집에서 나와 약속 장소로 가는 도중 가게에 들렀다. 이것저것 사 오라던 파티용품을 사고 전날까지 일하느라 미처 사지 못했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도 했다. 광장 한가운데 위치한 3층 건물 높이의 대형 트리가 가장 밝게 빛을 내고 있었다. 멍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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